차산농악

농악 또는 풍물에 있어 몇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진법, 음악적 흐름, 정통성, 기량적 측
면, 그리고 느낌 등으로 볼 수가 있다. 그 중에서 정통성의 문제는 그 풍물의 전체적인 틀과
단면을 규정짓게 된다. 일반적으로 족보가 그집안의 내력을 말해주듯이 풍물의 정통성은
상쇠 계보에 의해 규정된다.
청도차산농악은 상쇠 계보에 있어 복잡함이 없다. 현상쇠김오동은 그의 백씨(형)인 김시동
에 의해 전수받았다. 김시동은 차산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
너가 그 곳에서 1957년 사망하게 된다. 김시동은 차산리와 천왕기 싸움에서 언제나 경쟁 상
대였던 수계라는 상쇠에게서 상당한 기량을 전수받았다 한다. 수계는 1895년부터 1940년 까지
살았다. 수계가 누구에게 전수받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김시동이 일찍 일본에서 사망한 하였기
때문에 알려진 바가 없다. 고종때 천왕기 싸움이 유행하였다 한다. 천왕기 싸움은 놀이형태로서
존재하지만 내부적으론 하늘로부터 천신을 받은 천왕기를 앞에 세워 그 해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각 고을끼리 싸움을 하였던 것이다. 신앙의 형태로 존재하는 놀이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고 몇 백년을 두고 서서히 형성되며 토착화 됐다고 봄이 적당할 것이다.
따라서 차산농악의 상쇠 계보는 최소 18세기로 잡음이 맞지 않겠나 한다.
현 상쇠 김오동은 조카인 김위근 (1996년 작고)을 보유자 후보로 두었지만 사망하였고
같은 차산리의 박수운을 부쇠로 두었지만 1989년에 작고하고 만다. 1970년 후반에 전국 민
속예술경연대회를 나가면서 영남대학교 민속보존연구회와 인연을 맺고 상쇠계보를 이어 간
다. 10여명의 쇠잽이를 배출하였으나 이름을 꼽을 수 있는 이는 김정한, 정병철, 정중현 , 추
현태, 김태훈,손정우 정도이다. 지금 할동중인 이는 추현태, 김태훈뿐이다.1984년에 풍각면
소재의 풍각농고 농악반을 만들게 되어 추현태와 상쇠 김오동이 직접 지도하게 되어 상쇠계
보를 잇게 되는데, 조일환 백진환 박준오을 꼽을 수 있다, 현재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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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1895-1940)
    ---김시동(1905-1957)
      ---김오동(1918-2002)
        ---김위근(1925-1996)
            ; 김오동 조카
        ---박수운(1940-1989)
          ---추현태(1965- )
            ---김태훈(1968- )
            ---조일환(1968- )
            ---백진환(1968- )
            ---박준오(1969- )